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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한 바퀴, 그리고 안녕 칭다오

DAY 4 — 2024.06.04 (화)

벌써 마지막 날. 오후 비행기라 오전에 딱 한 곳만 더 보기로 했다. 번잡한 관광지 말고, 조용히 여행을 매듭지을 수 있는 곳 — 칭다오의 대표 사찰 담산사(湛山寺)로 향했다.

아침에 샤워하는데 샴푸의 중국어가 눈에 띄었다. 저걸 읽으면 시파쉐이 이다. 

연꽃 핀 연못의 담산사

절 앞 연못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연못 위에 선 하얀 관음상.

💡 젊지만 격 있는 절, 담산사
담산사(湛山寺)는 칭다오 시내에 자리한 대표적인 불교 사찰이다. 오래된 고찰처럼 보이지만 실은 1930년대에 세워진 비교적 젊은 절로, 근대 칭다오에 지어진 이름난 사원이다. 대웅보전과 여러 전각, 그리고 언덕 위로 솟은 약사탑(药师塔)이 어우러져, 붉은 지붕의 도시 한복판에서 고요한 동양의 정취를 전한다.

돌사자가 지키는 패방 문.

문을 지키는 돌사자.

화려한 단청이 칠해진 처마.

비둘기만 한가로이 오가는 아침 마당. 붐비던 어제와는 전혀 다른 차분함.

정교하게 그려진 단청 대들보.

전각 안, 금빛으로 빛나는 불상 앞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고요한 전각 마당.

전각 내부.

붉은 기둥의 전각.

언덕 위로 솟은 약사탑. 햇빛을 등지고 선 탑이 여행의 마지막 장면다웠다.

다시 별 모양 공항으로

절을 나와 다시 자오둥 공항으로.

이건 광고판. 맥주 축제 사진인것 같다. 축제할 때 한번 와보고 싶긴하다. 

이륙한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자 붉은 지붕의 도시와 바다가 서서히 멀어진다.

 

혼자만의 첫여행의 마무리

맥주박물관에서 혼자 든 잔, 오사광장에서 넋 놓고 본 야경, 라오산 케이블카 위의 감탄, 담산사의 고요한 아침. 누구와 맞출 것도 없이 오롯이 내 속도로 걸은 나흘이었다.

중국어가 가능했지만 현지에서 얼마나 통할지 알 수 없었고, 혼자하는 여행은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시간인 것 같다. 

 

再见, 青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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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산다는 바닷가 명산, 라오산

DAY 3 — 2024.06.03 (월)

셋째 날은 큰맘 먹고 도심을 떠나 동쪽 바닷가의 명산 라오산(崂山)으로 향했다. “라오산을 안 보면 칭다오를 반만 본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다녀와 보니 정말 그랬다. 다행히도 산 입구까지 지하철이 들어간다. 

바다에서 솟은 산의 초입

‘崂山’ 붉은 글자가 반기는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산 안으로.

산 안으로 들어가는 셔틀버스. ‘해상선산(海上仙山)’이라는 글자가 설렘을 더한다.

버스 주차장. 여기서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오른다.

💡 신선과 도교의 산, 라오산
라오산은 중국 도교의 대표적 성지 중 하나다. 예로부터 신선이 산다고 여겨져 진시황·한무제가 불로장생을 찾아 사람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기원전에 세워진 도교 사원 태청궁(太清宫)을 비롯해 수많은 도관과 비석이 남아 있다. 게다가 바다를 끼고 솟은 해안 산이라 산과 바다를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앞서 마신 칭다오 맥주의 그 ‘좋은 물’도 바로 이 산에서 나온다.

케이블카로 오르는 하늘길

짙은 녹음의 산자락.

산 아래 광장.

 

발밑으로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동시에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이미 감탄 연발.

💡 해발 1,132m, 중국 해안선의 최고봉
라오산의 주봉 거봉(巨峰)은 해발 약 1,132.7m로, 중국의 1만8천 km 해안선을 통틀어 가장 높은 산이다. 걸어서 오르면 정상부까지 두세 시간이 걸리지만, 케이블카(索道)를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물론 내린 뒤에도 능선을 오르내리는 발품은 각오해야 한다.

능선 위, 바위와 바다 사이를 걷다

하늘을 찌를 듯한 화강암 봉우리.

 

봉우리 사이로 난 돌계단.

겹겹이 펼쳐진 능선.

난간에 서면 능선 너머로 도시와 바다가 아스라이 보인다.

절벽 끝, 하늘과 맞닿은 바위.

정상에서 내려다본 바다 파노라마.

능선 위의 정자.

잠시 쉬어가는 정자.

바위에 새겨진 글자.

아찔한 능선 절벽.

산속의 붉은 도관, 오봉선관

능선 끝의 나무 문을 지나면.

산 중턱의 도교 건물, 오봉선관(五峰仙馆).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붉은 기둥의 선관. 땀을 식히며 잠시 앉아 산 기운을 느꼈다.

오봉선관 안내판.

다시 능선 파노라마.

바위 틈을 아슬아슬하게 이어 놓은 잔도. 스릴 넘치지만 그만큼 경치도 최고.

 

바위사이로 난 길

내려와서, 매운 생선구이와 발마사지

케이블카. 레이펑이 전화하면 기다리고 있단다. 레이펑은 모범적인 군인인데 친절한 서비스 이런뜻이라고 보면된다. 

시내로 돌아와 맛본 매콤한 루위(烤鱼).완샹청에 있다.

완샹청.

종일 걸어 지친 발을 위해 발마사지(足疗). 이런 건 중국이 정말 잘한다.

숙소로 돌아와 밀린 빨래까지. 산 냄새 밴 옷들을 돌려 놓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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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붕과 옛 성곽 사이에서

 

둘째 날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칭다오의 진짜 매력은 ‘붉은 지붕’에 있다더니, 오늘 하루 그 지붕들을 원 없이 봤다. 오전엔 바닷가 유럽식 별장촌, 오후엔 저 멀리 옛 성곽 도시까지. 혼자라 일정이 아무리 빡빡해도 눈치 볼 사람이 없었다.

중산공원 산책으로 시작

숙소를 나서 아침 이동 시작.

중국에는 어디서나 춤추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은퇴 후 딱히 할게 없어라는데...

 

 

동화 속 성 같은 화석루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화석루. 고딕풍 탑과 유럽식 정원이 손님을 맞는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식당 홀. 100년 전 별장 안으로 들어온 기분.

붉은 커튼과 앤티크 가구로 꾸며진 침실.

💡 장제스가 머물렀다는 화석루
화석루(花石楼)는 화강암으로 지은 성채 같은 별장이다. 장제스(蒋介石)가 머물렀다고 해서 ‘장제스러우’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고딕풍 탑과 유럽식 방들이 그대로 남아 지금은 칭다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스팟 중 하나다.

바닷가 담장엔 조개껍데기 장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팔대관과 바닷가

💡 여덟 개의 관문, 팔대관
팔대관(八大关)은 원래 여덟 개의 길로 이뤄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금은 열 개로 늘었다). 각 길 이름은 산해관·가욕관 같은 중국의 유명한 관문(要塞)에서 따왔다. 독일 조차지 시절 서양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던 동네였고, 지금은 20여 개국 양식의 건물이 모여 ‘만국건축박람회’라 불린다. 거리마다 심어진 나무가 달라, 봄엔 벚꽃길·가을엔 단풍길로 계절마다 색이 바뀐다.

솔숲 너머로 펼쳐진 백사장.

바위 위에 앉은 노란 지붕 정자.

각국 양식이 어우러진 팔대관의 집들. 멀리 화석루가 보인다

입장료가 8.5위안 중국은 입장표가 비싼데 그래도 여기는 싼편

소어산에서 만난 붉은 지붕의 바다

위챗으로 QR을 스캔해서 등록해서 들어가야한다. 들어가보니 신분증 번호를 적어야하는데 난 외국인이라 없음. 앞에 지키는 아저씨한테 외국인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승질내면서 QR 코드 찍고 들어오면 된다고 막무가내. 주변의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한명이 등록하면 같이 들어갈 수 있다고 같이 들어가자고 해줘서 같이 들어갔다.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가 아는 예전의 중국사람이 아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친절하고 스마트하다. 

소어산으로 오르는 길.

담쟁이 너머로 붉은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览潮阁 전망대. 망원경 너머로 붉은 도시가 담긴다.

정자에 오르니 붉은 지붕들이 파도처럼 겹겹이 펼쳐졌다. 오늘의 명장면.

💡 왜 지붕이 다 붉을까
소어산(小鱼山) 정상의 정자에 서면 ‘붉은 기와, 초록 나무, 푸른 바다, 파란 하늘(红瓦绿树, 碧海蓝天)’이라는 칭다오의 상징적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일이 도시를 계획할 때 붉은 기와 지붕을 하나의 규정처럼 통일한 덕분에, 100년이 지난 지금도 구시가지 전체가 붉은 물결을 이룬다.

붉은 기와, 초록 나무, 푸른 바다, 파란 하늘이 한 화면에.

대학로의 청도미술관

대학로(大学路)의 청도시미술관.

웅장한 돌기둥의 정면.

위에서 내려다본 나무 회랑.

겉모습과 달리 안은 강렬한 오렌지색 아트리움. 반전 매력.

아트리움 천장의 돔.

도심을 벗어나, 지모고성으로

시내에서 거리가 꽤 있는 편이라 지하철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곳이다. 버스를 타는데 외국인은 또 QR 결재가 안된다. 다행이 UnionPay 앱의 QR 결재는 되서 겨우겨우 결재 했다. 

택시로 한참을 달려 도시 북쪽 지모(即墨)까지. 혼자라 이동은 온전히 내 마음대로.

지모고성 성문.

돌로 쌓은 성문 아치.

💡 새로 지은 옛 성, 지모고성
지모고성(即墨古城)은 칭다오 유일의 성곽 도시다. 다만 진짜 오래된 유적은 아니고, 옛 제(齐)나라 시절의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 지은 재현 도시다. 성벽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안에는 문묘(文庙)와 관아, 상업 거리가 들어서 있다. 낮에도 좋지만 주말 저녁이면 야시장과 공연이 열려 훨씬 흥이 난다.

성문 안으로 이어지는 거리.

병아리 잡기. 아직 중국에는 이런게 있다. 

고풍스러운 거리에서 한 컷.

패방(牌坊) 문.

격자로 반듯하게 짜인 옛 도시의 구조가 한눈에.

붉은 문묘(文庙) 건물.

성벽 위의 정원.

성벽 위를 걸으며 내려다본 기와지붕. 새 건물이라도 규모만큼은 진짜 옛 성이다.

배부른 저녁, 그리고 불야성의 골목

저녁상엔 역시 칭다오 맥주. 사실 라오산 맥주 시켰는데 없다고 그냥 이거 가져다 줌. 

시키긴 했는데 뭔지 모르겠다. 말린생선 같긴한데.. 

얼큰한 국물에 소고기가 듬뿍 올라간 우육면. 하루 종일 걸은 몸에 딱이었다.

 

저녁엔 화려하기 그지없는 명월산해관으로 갔다. 항상 현지인처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게 원칙이었는데 시간이 없어 택시탔다. 택시 아저씨가 자기가 칭다오에 사는 한국 사람들 많이 태워봤는데 중국어 잘하는 한국인 처음 본다고 칭찬해줬다.  궁전처럼 금빛으로 번쩍이는 문을 지나자, 온갖 지역 먹거리 가게와 함께 곳곳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테마 먹자골목 입구.

공중에서 와이어를 타고 나는 곡예.

산을 담은 달 모양의 문.

거대한 연꽃 등이 늘어선 화려한 거리.

손오공이 유행인가

 

공연장 뒤에서 쉬는 무희들 러시아 사람인가보다. 중국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꽤 많다.

무대를 가득 채운 색색의 의상.

불빛과 사람들, 냄새와 음악이 뒤섞인 밤. 혼자였지만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 섞여 이것저것 구경하고, 먹고 싶은 걸 골라 먹었다. 누구를 기다릴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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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맥주의 도시로

공항 리무진을 타는 아침부터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출장으로 여러번 중국을 가봤지만 여행으로 가는 건 처음이다. 그리고 혼자가는 여행도 처음이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홀가분했다.  첫 혼자 여행의 시작이다.

 

최대한 저렴한 비행기표를 찾느라 7시50분 인천발 칭다오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한가지 간과한 것은 적어도 2시간전에 공항에 도착하려면 최소 5시 50분에 도착해야한다는 것. 

 

이를 위해 부칠 짐을 만들지 않기위해 가방하나 달랑매고 온라인으로 발권해서 최소의 시간만으로 비행기 입구까지 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 06:17 · 인천국제공항

이른 아침의 인천공항. 혼자라 체크인도 보안검색도 온전히 내 페이스대로.

여권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기다린 탑승구.

드디어 탑승. 좌석에 앉으니 여행이 실감났다.

 

별 모양의 관문, 자오둥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만난 자오둥 공항. 신기하니 다 찍었다

시원하게 뻗은 천장 곡선에 한참을 올려다봤다.

💡 하늘에서 보면 불가사리
2021년 8월 문을 연 칭다오 자오둥 국제공항은 하늘에서 보면 불가사리(海星) 모양이다. 중앙 홀에서 다섯 개의 탑승동이 팔처럼 뻗어 있어 어느 게이트든 도보 8분 안에 닿는다. 지붕 면적 약 22만㎡로 준공 당시 세계 최대급, 그것도 두께 0.5mm(A4용지 정도)의 초박형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 08:51 · 지하철로 시내까지

칭다오北역, 핑크빛 기둥이 반겨준다. 중국어가 통하니 표 사고 환승하는 것도 겁나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 하나 뽑아 들고.

노선도를 확인하며 첫 목적지, 맥주거리로.

맥주의 도시에 왔으면 맥주박물관부터

평일 낮인데도 인산인해인 맥주박물관.

100년 세월이 밴 오크통과 옛 로고.

맥주의 역사를 따라 걷는 전시 코스.

💡 왜 하필 칭다오 맥주일까
칭다오 맥주는 1903년 독일·영국 상인이 세운 ‘게르만 맥주회사 칭다오 지사’에서 시작됐다. 설비와 원료를 통째로 독일에서 들여왔는데, 결정적 이유는 근처 라오산(崂山)에서 솟는 맑고 깨끗한 지하수 — 좋은 물이 곧 좋은 맥주였다. 그렇게 시작한 맥주가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가 되었다.

관람 코스 끝, 갓 뽑은 생맥주 시음. 원산지에서 마시니 확실히 더 시원하고 부드러웠다.

지금도 돌아가는 거대한 양조 설비.

박물관 안 바에서 한 잔 더. 혼자 스스로에게 ‘잘 왔다’ 하고 건배.

붉은 지붕과 독일의 흔적, 그리고 성당

맥주거리를 나와 하염없이 걷다보니 나온 시장

 

오래된 독일 건물에 들어선 KFC. 과거와 현재가 태연히 겹친다.

석조 건물이 이어지는 옛 시가지.

골목 끝에서 불쑥 나타난 두 개의 첨탑.

성 미카엘 대성당. 노란 벽에 붉은 지붕의 고딕 성당이다.

💡 노란 벽, 붉은 지붕의 고딕 성당
저장로(浙江路) 천주교당, 정식 이름은 성 미카엘 대성당(圣弥厄尔大教堂)이다. 독일인들이 1932년부터 지어 1934년 완공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섞였고 두 첨탑은 약 56~60m. 내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풍 장식으로 꾸며져, 칭다오가 ‘동양의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이유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으로 꾸며진 성당 내부.

바다로 — 잔교와 작은 섬

더위를 식힐 겸 들른 시내 쇼핑몰. 다시 바다로.

바다 위로 뻗은 잔교 끝의 팔각 정자, 회란각(回澜阁).

잔교를 따라 걷는 사람들.

 

칭다오의 상징 잔교(栈桥)는 청나라 때 군사용 부두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칭다오 맥주 라벨에도 그려지는 도시의 얼굴이 되었다.

맞은편 작은 섬 소청도(小青岛). 파도 소리 들으며 혼자 한참 앉아 있었다.

혼밥, 그래도 든든하게

슬슬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 중국어로 편하게 주문했다.

현지식 볶음 요리로 혼밥. 어색하기는커녕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서점 궁금해서 들어가봤는데 별것 없었다.

하루의 하이라이트, 오사광장의 밤

해질 무렵 오사광장 앞바다. 마천루가 물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붉은 소용돌이, ‘오월의 바람(五月的风)’.

💡 광장 이름에 담긴 1919년
오사광장(五四广场)의 이름은 1919년 5·4 운동에서 왔다. 독일이 갖고 있던 칭다오의 권익을 일본에 넘기려 하자 이에 항의해 터진 반제국주의 운동이 5·4 운동이고, 그 무대가 된 도시가 칭다오다. 광장 한복판의 붉은 조형물 ‘오월의 바람’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높이 약 30m·무게 700톤의 강철 소용돌이가 바람과 횃불을 형상화했다.

어둠이 내리자 조형물에 붉은 불이 들어온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맞은편 부산만(浮山湾) 빌딩들이 일제히 조명쇼를 시작했다.

건물 하나하나가 거대한 스크린이 된다.

물결치듯 빛나는 마천루.

혼자 보는 야경이 오롯이 내 것이었다. 첫 혼자 여행의 첫날,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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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여행 · 명소 기록

뤄양 관림(關林) — 관우의 머리가 잠든 곳

2024.12.29 방문 · 허난성 뤄양(洛陽) · 관제묘(關帝廟)

용문석굴을 본 뒤, 어디를 더 갈까 고민하다 택시를 잡아 관림으로 향했다. 삼국지의 영웅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이자 그의 머리가 묻혔다고 전하는 곳. 오후 2시 반쯤 도착했다. 어릴 적 삼국지를 읽으며 흠모하던 영웅의 사당에 직접 선다고 생각하니, 혼자임에도 발걸음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관림 앞 거리. 한적한 동네 한가운데에 관우를 모신 거대한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천오백 년 전 영웅의 안식처가 숨어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왜 '관림(關林)'인가
중국에서 무덤에 '림(林)'자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은 단 둘뿐이다. 공자의 묘인 공림(孔林), 그리고 관우의 묘인 관림(關林). '림'은 성인(聖人)에게만 허락된 호칭으로, 그만큼 관우가 중국에서 신(神)의 반열로 추앙받았음을 보여준다. 문(文)의 성인 공자, 무(武)의 성인 관우인 셈이다.
관우의 머리가 이곳에 묻힌 사연
서기 219년 관우는 오(吳)나라 손권의 군대에 사로잡혀 참수당한다. 손권은 그 화를 조조(曹操)에게 돌리려 관우의 머리를 위(魏)나라로 보냈는데, 관우를 흠모하던 조조는 오히려 향나무로 몸을 만들어 제후의 예로 뤄양에 후하게 장사 지냈다. 그래서 "머리는 뤄양에, 몸은 당양에, 혼은 고향에 있다"는 말이 전한다. 지금의 관림 건물 대부분은 명나라 만력제 때(1592년) 세워졌다.

붉은 전각과 비석의 숲

산문(山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전각과 패방, 비석, 그리고 수백 년 된 고백나무(古柏)가 어우러진 장엄한 공간이 펼쳐진다. 한 걸음씩 안으로 들수록, 영웅을 향한 후대의 흠모가 얼마나 깊었는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향과 촛불이 피어오르는 배전(拜殿). 지금도 장사 번창과 의리를 비는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우는 후대에 재물신(財神)으로도 모셔져, 상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금빛으로 빛나는 전각과 관제상

안쪽 전각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천장과 벽을 가득 메운 금빛 채색과 벽화, 그리고 위엄 있는 관우상 앞에서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됐다. 소설 속 글자로만 만나던 영웅이, 눈앞에 신으로 모셔져 있었다.

전각 내부를 가득 메운 금빛 조각과 채색 벽화. 삼국지 속 관우의 일화들이 화려하게 묘사돼 있어, 한 장면 한 장면을 짚어가며 보는 재미가 컸다.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금빛 부조와 벽화. 빛을 받아 전각 전체가 황금빛으로 일렁였다.

섬세하게 조각된 목조 부조 현판. 사당 곳곳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다.

전각에 모셔진 관우상. 붉은 얼굴에 긴 수염, 위엄 가득한 모습으로 무성(武聖)으로서의 풍모가 가득하다.

여긴 관우의 부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자를 잘만나야한다. 

사당 가장 안쪽의 관총(關冢) — 관우의 머리가 묻혔다는 봉분. 천팔백 년 전의 영웅이 이 흙더미 아래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가슴을 스쳤다.

경내를 지키는 석주. 관림을 끝으로 뤄양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시안으로 향했다. 영웅의 마지막 안식처를 둘러본 여운이 오래 남았다.

관림 입장료는 40위안, 용문석굴에서 관림까지 택시비는 약 12위안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시안의 만두 노포 덕발장(德發長)에 들러 만두와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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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여행 · 명소 기록

뤄양 용문석굴(龍門石窟) — 이수 강가에 새긴 10만 부처

2024.12.29 방문 · 허난성 뤄양(洛陽)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일차는 시안을 벗어나 옆 도시 뤄양으로 향했다. 시안베이역에서 고속철로 약 1시간 40분, 뤄양룽먼역에 내려 71번 버스를 타고 용문석굴로 갔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쯤 어딘지 몰라 앞사람에게 중국어로 여기가 용문석굴이 맞냐고 물어봤더니 영어로 난 중국어 못한다고 답이 온다. 영어로 물어보니 자기도 여기가 처음이란다.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태국사람이란다. 나도 한국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즐겁게 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시안의 병마용·화산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거대한 종교 미술의 현장이었다. 강을 따라 펼쳐진 절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상 갤러리라니, 그 발상 자체에 압도되었다.

매표소에서 석굴까지 이어지는 진입로. 겨울 햇살 아래 이수(伊水) 강을 따라 걷는 길이 더없이 운치 있었다.

'龍門(용문)'이라 새겨진 입구. 두 산이 마주 보며 강을 끼고 솟은 모습이 마치 거대한 문(門)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여기는 무슨 백거이의 집이라든가 묘라든가 그랬던 것 같다. 강물에 비친 절벽까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용문석굴이란
용문석굴은 뤄양 남쪽, 이수(伊水)가 흐르는 두 산자락의 절벽에 굴을 파고 부처를 새긴 거대한 석굴 사원이다. 북위(北魏)가 수도를 뤄양으로 옮긴 493년경부터 당나라 때까지 약 400년에 걸쳐 조성됐다. 크고 작은 굴이 약 2,300여 개, 불상은 10만 구가 넘는다. 다퉁의 윈강석굴, 둔황의 막고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벌집처럼 뚫린 절벽, 그 속의 부처들

강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면 절벽 전체가 크고 작은 감실(龕室)로 빼곡하다. 손바닥만 한 소불(小佛)부터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대불까지, 1,500년 세월이 깎아 놓은 신앙의 흔적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나하나에 담겼을 누군가의 간절함을 떠올리니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절벽을 파고 만든 감실 안의 불상들. 사람들로 붐비는 인기 구역으로, 비교적 큰 불상이 모여 있다.

오랜 풍화로 얼굴이 닳은 본존불. 그 마모된 표정에서 오히려 깊은 세월의 무게가 전해졌다.

층층이 뚫린 굴들. 황실과 귀족, 일반 백성까지 저마다 발원을 담아 부처를 새겼다.

나란히 새겨진 불상들. 가까이 보면 저마다 표정과 손 모양이 조금씩 달라 보는 재미가 있다.

작은 감실 안에 홀로 모셔진 불상. 이런 크고 작은 굴이 절벽을 따라 2,300개가 넘는다니 그저 아득했다.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좌불. 옷 주름의 유려한 흐름에서 당대 조각의 높은 경지가 느껴진다.

벌집처럼 뚫린 만불동(萬佛洞) 일대. 작은 불상이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천오백 년에 걸쳐 한 자 한 자 새겼을 정성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백미 — 봉선사 노사나대불

용문석굴의 절정은 단연 봉선사(奉先寺)의 노사나대불이다. 계단을 올라 마주한 순간, 그 압도적인 크기와 온화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한참을 멈춰 섰다. 거대하지만 결코 위압적이지 않은, 자애로운 표정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본존 노사나불은 높이 약 17.14m(머리만 4m). 당 고종 때 조성되어 675년 완성됐으며, 측천무후가 화장 비용을 시주했다고 전한다. '동방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처럼 잔잔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누군가 놓고간 작은 귤. 중국의 귤은 우리 귤과 다르게 작지만 껍질이 두껍고 단맛이 강하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이수의 풍경. 다리를 건너 동산 쪽에서 보면 서산 석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서산 석굴의 전경. 멀리서 봐야 비로소 절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교 미술관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풍경을 눈에 담으며 발길을 돌렸다.

용문석굴 입장권은 90위안(위챗페이만 가능). 71번 버스는 1.5위안인데 잔돈이 없어 2위안을 냈다. 석굴을 본 뒤에는 가까운 관림(關林)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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