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여행 · 명소 기록
병마용(兵馬俑) — 2200년 만에 깨어난 진시황의 지하군단

시안에 왔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 병마용. 지하철로 화청지(华清池)역까지 간 뒤 버스로 갈아타고 혼자 향했다. 버스 안내원이 뭔가 열심히 설명해 주는데 잘 못알아듣겠다. 외국인은 위챗 예약이 안 되는 듯해 현장에서 표를 끊었고, 오디오가이드(130위안, 반납 시 100위안 환급)를 목에 걸고 입장했다. 다행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드디어 그 병마용을 본다'는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진시황제릉박물원(秦始皇帝陵博物院) 정문. 진시황은 여산(骊山) 자락을 명당으로 보고 자신의 능을 앉혔고, 병마용은 그 능을 호위하는 부장 갱이다.

입구 광장에 우뚝 선 거대한 병사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본격적인 관람 전부터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목에 걸고 다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130위안에 빌려 100위안을 돌려받으니 실제 비용은 30위안. 도용 하나하나의 의미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병마용은 1974년 3월, 가뭄에 우물을 파던 린통의 농민들이 흙 속에서 사람 크기의 도용(陶俑) 파편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발굴 결과 진시황릉 동쪽 1.5km 지점에서 흙으로 빚은 실물 크기 병사·말 약 8,000구가 줄지어 묻혀 있었다. 황제를 사후에도 호위하기 위한 '지하 군대'로, 20세기 고고학 최대의 발견으로 꼽힌다.
1호갱 — 끝이 보이지 않는 군진
가장 먼저 들어간 1호갱은 그 규모에 그야말로 말문이 막힌다. 축구장만 한 격납고 안에 보병 도용 수천 구가 동쪽을 향해 도열해 있다. 2,200년 전 사람들이 이 많은 병사를 한 명 한 명 손으로 빚었다는 사실 앞에서, 경이로움을 넘어 어떤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1호갱 전경. 갱도(坑道)마다 흙벽을 사이에 두고 병사들이 열을 맞춰 서 있다. 놀랍게도 도용의 얼굴은 하나하나 다 다르게 만들어졌다 — 마치 실제 군대를 그대로 흙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난간 가까이에서 본 병사들. 원래는 화려한 채색이 입혀져 있었지만, 발굴되어 공기에 닿는 순간 안료가 떨어져 나가 지금의 흙빛이 되었다.

갱의 배치를 설명한 안내판. 1호갱은 보병 중심의 주력 부대, 2호갱은 기병과 궁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된다.

아직 발굴이 진행 중인 갱의 안쪽. 부서진 채 묻혀 있던 도용을 거대한 퍼즐처럼 맞춰 다시 세운다. 지금도 진행 중인 작업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저마다 다른 얼굴, 저마다 다른 계급
실내 전시관에서는 대표 도용들을 유리장 안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 갑옷의 무게, 머리를 묶은 방식, 손의 모양만으로도 보병·궁수·장교·장군이 구분된다.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2천 년 전 이 병사들의 모델이 된 진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무릎을 꿇고 활을 겨누는 궤사용(跪射俑). 신발 바닥의 미끄럼 방지 무늬까지 새겨져 있어 가장 정교한 도용으로 꼽힌다.

가장 계급이 높은 장군용(将军俑). 키가 크고 갑옷에 매듭 장식이 화려하며, 배가 나온 위엄 있는 모습이다.

갑옷을 입은 무사용. 계급에 따라 갑옷의 형태와 장식이 세밀하게 달라진다.

비교적 가는 체형의 군리용(軍吏俑). 표정과 자세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사실적이다.

발굴 당시의 채색을 일부 간직한 도용. 본래 병마용은 붉은색·녹색·자주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컬러 군단'이었다.

도용의 얼굴 클로즈업. 눈매·콧날·수염까지 제각각이라, 8천 명이 모두 다른 얼굴을 가졌다는 말이 실감 난다.

꼿꼿이 선 입상 무사용. 당장이라도 명령을 받고 진군할 듯한 기세다.

아직 복원되지 못한 도용 파편들이 무더기로 쌓인 발굴 현장. 수천 구의 군단을 다시 세우는 일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전차를 끌던 도마(陶马). 네 마리가 한 조를 이뤄 전차 한 대를 끌었다. 근육과 콧구멍까지 사실적으로 빚어, 금방이라도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다.
백미는 청동마차(銅車馬)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별도 전시관의 청동마차였다. 진시황릉 봉토 서쪽에서 1980년 출토된 두 대의 청동 마차로, 실물의 절반 크기지만 금·은 장식과 정교한 부품 수천 개로 이뤄진 고대 금속공예의 결정체다. 그 정밀함 앞에서 입이 떡 벌어졌다.

1호 청동마차(立車). 마부가 서서 모는 의장용 마차로, 황제 행렬의 길을 여는 역할을 했다. 2천 년 전에 이런 정밀한 금속 공예가 가능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2호 청동마차(安車). 지붕이 덮인 황제 전용 마차로, '중국 고대의 청동 명품'이라 불린다. 창문과 우산까지 실제로 여닫히도록 만들어졌다.

갱의 단면 구조. 도용을 세운 뒤 통나무로 천장을 덮고 흙을 쌓아 지하 공간을 만들었다. 항우의 군대가 불을 질러 천장이 무너지며 도용들도 함께 부서졌다고 전한다.

네 마리 말과 마부의 청동 디테일. 고삐 하나, 장식 하나까지 살아 있는 듯 정교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날의 전체 여정과 진시황릉·화청지 이야기는 2일차 기록에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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